데이터가 넘쳐난다. 컴퓨터에서 쓰는 프로그램은 물론 이제는 밥 못지않게 중요한 인터넷을 통해 받은 수많은 파일들, 여기에 MP3,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 다양한 기기들로 만드는 파일들.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인터넷 초기를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파일이 늘어나는 만큼 삶이 윤택해지기 보단 오히려 발목을 잡는것만 같다. 정보의 바다라는 꿈으로 시작했으나, 이젠 쌓인 쓰레기더미로 인해 정보를 찾기 힘들어진 인터넷처럼.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파일을 만들어내는 기기들의 종류와 파일의 양이 늘어나는 만큼 저장매체도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다. 컴팩트플래시와 스마트미디어카드로 시작한 플래시메모리는 MMC와 메모리스틱, XD픽쳐카드 등이 차세대 저장매체의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였으며, 라이센스와 제작비용, 지원업체 비율 등의 이유로 SD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SD가 자리를 잡았다고 말썽이 없는 건 아니어서, 구형기기에서 신형 SD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micro SD부터 mini SD, SD, 여기에 용량 한계를 넘어보고자 포멧방식을 변경한 SDHC 규격으로 복잡해진 족보가 문제다. SD규격의 미디어는 지원하는 어댑터를 이용해 상호 호환이 가능하지만, 매번 어댑터를 챙기는 것도 일이라면 일이다. 대부분의 메모리 카드리더가 SD는 지원하되 어댑터 없이 micro SD와 mini SD를 바로 쓸 수 없으며, 카드리더가 예전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처럼 절대적인 기준으로서 보급되지 않은점 역시 SD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나마 호환성 문제가 적은 게 USB방식으로, 이제는 없는 게 이상할 정도로 흔한 USB 인터페이스를 등에 업고 휴대용 저장매체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예외도 있어서, 막상 USB단자를 쓰려고 보면 주변기기로 꽉 차 빈자리가 없거나 컴퓨터 뒤의 포트를 찾아봐야 하는 등 난감한 경우가 꽤 있다. 게다가 카메라나 캠코더 같은 디지털기기는 USB메모리를 저장매체로 쓰지 않으니, 디지털기기의 저장매체로는 SD를, 데이터 휴대에는 USB메모리로 각자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나뉘고 있다.
하나만 들고 다녀도 귀찮을 판에 두세개를 챙겨야 하는 이런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는 제품들이 조금씩 출시되고 있는데, 메모리 전문은 전문이되, 조금 뜻밖의 OCZ에서 플래시메모리 제품군을 선보였다. OCZ이라 하면 대부분 화려한 방열판과 어이없는 고클럭, 짤막한 레이턴시의 메모리를 생각하는데, 사실 이것 말고도 하는 것이 꽤 있다. OCZ 전문인 오버클럭 용품으로 메모리를 비롯하여 파워서플라이, CPU 쿨러나 써멀콤파운드까지 꽤나 다양한 제품군을 아우르고 있으며 각 제품군은 그 분야에서 나름대로 특화하여 구색 갖추기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 다룰 메모리 역시 일반적인 것과는 조금 다른 개성 강한 놈들이다.
플로피디스크 이후로 CD-Rewriter가 보급되면서 용량 큰 CD를 휴대용 저장매체로 활용하기도 했지만, CD는 그 태생부터가 넓적한 레코드판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므로 휴대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가격대 성능비가 꽤 좋아진 플래시메모리가 차세대 저장매체로 떠오른 지금, 개인용 저장매체로 많이 쓰이는 놈은 USB메모리로 인터페이스에 의한 호환성 문제가 적은 게 가장 큰 장점이다.
OCZ의 Mini-Kart는 비교적 평범하게 생겼다. 다양한 방열판을 화려하게 두른 OCZ 메모리를 생각해볼 때 상당히 점잖은 모양으로, 명색이 OCZ인데 하다못해 홀로그램 스티커라도 좀 붙여야 하지 않나 싶긴 하지만 플래시 메모리 제품군은 별다른 장식 없이 메모리 자체의 기능위주로 출시했다. 쓸데없이 이것저것 달아놓지 않는 점은 가격부분을 생각해볼 때 소비자로서 오히려 반길 부분이다.
대신 아무 장점 없이 시장에 묻히긴 싫은지 나름대로 날을 세웠다. 43 X 19 X 2.8 mm, 얇다. 근래 들어 USB 단자를 변형하여 두께를 줄인 제품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흐름에 맞췄는지 다른 기능 없이 순수하게 플래시메모리기능만 가지고 나름대로 크기를 줄였다 할 수 있다. 보다시피 CF보다 작고 얇은데다 CF케이스만한 플라스틱케이스에 담아 가지고 다닐 수 있다. 비교적 작은 크기로 휴대성은 좋은 편. 대신 회전식 덮개나 탈착식 뚜껑 같은 메모리 자체에 USB단자를 보호할 방법이 따로 없이 케이스에만 의존하는 이런 방식은 다른 USB 메모리에 비해 불편하다.
메모리 뒤쪽에는 대각선으로 휴대용 끈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 원래는 끈을 끼우는 구멍이지만, OCZ 홈페이지의 사진처럼 줄을 끼우는 것이 쉽지 않다. 차라리 위와 같이 링을 끼우는 편이 빠르다. 끈을 끼워 열쇠나 휴대전화에 달아 쓸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 가능하단 얘기다. 휴대기기에 대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메모리를 학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다이어리나 지갑 안에 카드처럼 넣어 다니는 편이 좋다. 얇아서 지갑이 빵빵해지는 부담 없고, 카드형 플래시메모리들처럼 넓은 것도 아니라 어지간해선 지갑 안에서 휘거나 망가질 걱정이 없다. 다만, 어디에 넣어두건 USB단자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게 문제긴 한데, 지갑 재질이 매우 특이하지 않는 이상 별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USB에 꽂으면 잘 보이지 않던 LED가 빛나기 시작한다. USB 전원이 들어오면 켜진 상태를 유지하며, 데이터를 옮겨 담기 시작하면 깜빡거리며 꽤나 바쁜 척 한다. 푸르스름한 불빛, 이미 컴퓨터 개조 쪽에선 흔한, 그러나 나름 분위기 있는 LED로 다른 빨간색이나 녹색에 비해 비싼 놈이다.
Mini-Kart는 OCZ 답지 않게 제품 포장이나 홈페이지에 메모리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렇다고 달랑 "USB 메모리"다 하고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FDBENCH를 이용해 전송속도를 간단히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런 테스트 프로그램의 경우 시스템 조건에 따라 오차가 좀 있으므로 절대적인 기준보다는 대략 이정도 라는 수준으로 보는 편이 맞다. 읽기 약 17MB/s 쓰기 약 4MB/s 의 평범한 수준으로, 전송속도를 생각해볼 때 메모리방식은 MLC로 추측할 수 있다. 느린 건 용납 못하는 OCZ의 이름값을 생각할 때 "참 잘했어요"도장 찍어주기엔 꽤나 모자란 속도. 그러나 대부분의 얇은 플래시메모리가 부피와 가격 등의 문제로 속도를 내세우는 제품이 거의 없으며 이런 이유로 메모리의 속도를 표기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점을 생각해보면 느리다고 마냥 구박할만한 일은 아니다.
다음은 Secure Digital Dual로, 기본적으로는 SD지만 USB 인터페이스를 더한 플래시메모리다. 이런 구성은 샌디스크에서 Ultra II SD Plus로 시작하였으며 디지털기기에서는 SD방식의 데이터 저장매체로, 일반 데스크탑이나 노트북 등에선 USB를 이용하여 카드리더 없이 데이터를 바로 불러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저장매체로서의 SD의 장점과 작은 크기는 물론, 인터페이스로 인한 불편함을 깔끔히 해결한다는 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저장매체라 할 수 있지만, 의외로 흔하지 않은 편이다. 인터페이스를 가리지 않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조금 비싼 가격과 함께 제조가 간단치 않다는 점, SD에 비해 용량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 등으로 인해 공급 자체가 그리 많지 않으며 아는 사람조차 적어 틈새시장만 유지하고 있다. 샌디스크의 Ultra II SD Plus가 나온 이례로 유사제품들이 몇 종류 나왔으나 시장에서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에 OCZ가 도전한 셈으로, 성장 가능성을 장담하지 못하는 시장에 뛰어든 모험이라 할 수 있다.
USB 단자 덮개는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으로 단자 보호와 함께 충분한 강성을 확보하였으며 SD답게 쓰기방지탭도 있다. 다만, 쓰기 방지탭은 카드리더에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USB단자를 사용하여 데이터를 옮길 때는 쓸모가 없다. 일부 USB메모리와 같이 회로상에 구현된 것이면 SD와 USB 상관없이 쓸 수 있겠으나, 이 부분까지 고려한 제품은 아직 없다.
OCZ에서는 최대 80배속, 즉 12MB/s의 전송속도를 표기했는데, 실제 어느 정도나 나오는지 보자. 위의 수치는 SD카드리더를 내장한 노트북에서 테스트한 결과로, 노트북의 메모리 카드리더는 보통 이상의 수준은 된다는 점과, 같은 시스템이라는 조건아래 인터페이스만 달리하여 속도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을 사용했다. 카드리더의 성능이 좋다면 SD 성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어 메모리의 속도를 제대로 쓸 수 있으며, USB의 경우 인터페이스를 바꾸는 만큼 손실이 있으므로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제대로 된 카드리더에서 SD로 쓰는 것이겠으나, 현실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메모리 카드리더의 성능이 그리 좋지 않으며, 카드리더의 영향을 받지 않는 USB 전송속도가 오히려 제 속도에 가깝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위의 경우도 카드리더의 한계로 SD의 속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실제 메모리 속도는 USB인터페이스보다도 빠르게 나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자.
마지막으로 Trifecta는 micro SD에 SD어댑터로 구성한 제품으로, 다른 SD와는 달리 SD 어댑터에 USB 인터페이스를 추가한 제품이다. 메모리 보단 메모리 어댑터가 장점인, 배보다 배꼽이 더 "중요한" 경우다.
참으로 오밀조밀한 게 이쯤 되면 실제 쓸 수 있는 한계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다. 가뜩이나 작은 SD에 USB 하나 더 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숫제 USB 카드리더로 만들자니 그 과정에 땀 꽤나 흘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터페이스를 보면 앞서 나온 Secure Digital Dual의 응용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USB 카드리더 역할을 하는 SD 어댑터는 당연히 다른 Micro SD도 쓸 수 있다. micro SD 어댑터로서는 가장 편리한 제품이라 할 수 있는데 딱 한 가지, 쓰기방지탭이 없다. 메모리 슬롯을 오른쪽으로 만들었으면 쓰기방지탭을 쓸 수 있을텐데, 큰 효용성은 없지만 낡은 형광등 뺨치는 기억력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섭섭한 부분이라 하겠다.
대신 이번에는 USB메모리로 쓸 때 메모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LED가 있다. SD 어댑터 안에 LED를 넣어 메모리 전원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다만, 데이터 전송 시 깜빡거리거나 다른 불빛으로 알리는 기능 없이 단순히 전원에 따라 LED를 켜는 식이라 아쉽긴 한데, 요만한 크기에 이정도 기능성이면 그정도 약점은 참고 넘어갈 만 하다.
이번에는 속도 확인. 휴대전화에 주로 쓰는 micro SD 특성상 속도를 따진다는 게 무의미하지만 저장매체로서 한 번은 짚고 넘어갈 일이다. OCZ은 60배속, 즉 9MB/s의 전송속도를 표기했는데, 실제 어느 정도의 속도가 나오나 보자. SD카드리더를 내장한 노트북에서 테스트 결과로, 이번에도 USB의 속도가 더 빠르게 나왔다. 속도는 그다지 뛰어나진 않지만, micro SD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샌디스크 제품 역시 이정도의 성능임을 생각해 볼 때 OCZ만의 문제 보다는 micro SD의 한계로 보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하드디스크는 사실상 속도향상보다는 용량증가와 가격내리기에 들어갔고 차세대 DVD에선 블루레이와 HD-DVD가 경쟁 중이며 플래시메모리는 소형 미디어로서 USB와 SD카드로 나뉘었다. 이후에는 플래시 저장장치가 하드디스크를 대체할 것이며, 차세대 DVD는 디스크 계열을 제외한 미디어 중에서 가장 큰 용량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 용량비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저장매체가 온라인으로 흡수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소형 미디어는 앞으로도 어느 한쪽이 이기는 분위기가 아닌 지금과 같이 디지털기기 저장매체로서의 역할과 보편적인 인터페이스의 호환성이 장점인 USB 계열로 유지될 것으로 보며 이번 OCZ의 제품군은 이 두 종류를 골고루 아우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Mini-Kart는 얇은 두께로 지갑 안에 넣어 다닐 만큼 휴대성이 좋은 USB 계열이며, Secure Digital Dual은 SD와 USB 인터페이스를 가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Trifecta는 SD어댑터에 USB를 합쳐 평범한 micro SD에 인터페이스의 자유를 더했다는 점이 장점이다. 아직까지는 이런 특이한 제품군이 틈새시장에 불과하나, 그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으며 단순히 가격과 속도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저장매체의 편의성과 기능성을 고르는 여유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